회의실 공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본부장의 시선이 정호에게 꽂혔다. 단정한 정장 차림,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서 묘한 압박이 흘렀다.
“정호 씨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어제 보고서가 마무리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직접 듣고 싶군요.”
팀장은 잽싸게 끼어들었다.
“본부장님, 이 친구가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하라고 했는데, 그냥 퇴근해버려서—”
그러나 본부장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팀장의 말을 잘랐다.
“나는 네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정호 씨, 당신에게 묻고 있네.”
순간, 사무실이 숨을 죽였다. 정호는 목에 걸린 말들을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
“…저희는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결국 아침에 다시 수정하라는 일이 많습니다. 어제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가족과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순간, 선영의 눈이 커졌다. 정호가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몇몇 동료는 의자에서 몸을 움찔하며 자세를 고쳤다.
본부장은 미묘하게 웃었다.
“가족이라… 흥미롭군. 그 선택이 회사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알고 있나?”
정호는 침을 삼켰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본부장은 정호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좋아. 오늘 오후, 임원진 회의에 와서 이 얘기를 직접 해보게. 네 용기가 진심인지, 우리가 확인해 보지.”
회의실은 폭발 직전의 정적에 휩싸였다. 팀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선영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여 있는 걸 느꼈다.
이제, 단순한 퇴근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작은 선택이,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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